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어른들보다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문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어휘들을 외어야 한다. 언어 기술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유창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구나 언어를 공부하고 연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1. 아이들의 어른과 다른 언어 습관
어른보다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 외에도 아이들은 흔히 어른들의 언어 관습과는 다른 언어 관습을 가지고 있다. 가령 당신은 일곱 살의 아이에게 오늘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두 가지 대답 중 하나를 듣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단순히 '아무것도 안 했어요'가 될 것이다. 당신이 화가 나서 '나는 너를 10시간 동안이나 보지 못했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냐는 거야'라고 재차 묻는다고 해보자. 당신은 역시' 아무것도 안 했어요'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종류의 대답이 그로부터 얻을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에 실망스럽다면 다음의 대답은 정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실망스러울 것이다. 당신이 '그 영화가 얼마나 좋았니? 하고 묻는다고 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당신은 영화의 전체 줄거리에 대한 횡설수설하는 묘사와 여러 장면들에 대한 의문(주인공이 사막으로 차를 몰고 가야만 했는가? 그는 뒤에 나쁜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는 것을 몰랐는가? 그는 폭스바겐이 아니라 트랜스암을 몰았는가?), 그리고 아이 자신이 먹은 것, 그의 누이가 먹은 것, 누이가 소다수를 엎질렀을 때 한 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의견, 마지막으로 아이가 1981년 10월 이래 보았던 모든 다른 영화와의 비교를 듣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말은 어른들의 말과는 매우 다르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언어에 친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에서 중요한 것과 필요한 것에 대한 아이들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어른들과는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다르게 말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물론 경솔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하는 스타일이 흔히 어른들의 스타일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할 때 어른과 아이 사이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회는 매우 적어질 것이다.
2.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몸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크다
가만히 앉아서 어떤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당한 지적 고양을(그리고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아이가 무엇을 설명하려고 할 때 아이를 잘 관찰해 보라. 그 아이는 당신의 눈을 바라보고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는 당신의 목을 보고발을 보고 그리고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아이는 일어났다가 다시 앉고 우유잔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아이는 조금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무엇인가를 듣고 있을 때나 무엇인가를 이해하려 노력할 때 그를 관찰해 보라.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의 아이 모습은 그런 노력을 할 때의 어른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아이들은 실제로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도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일 때 그들은 정말 자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들썩들썩한다. 미국의 교육·진보 운동이 얻은 최대의 성과는 아이들의 신체적 움직임을 제한하게 되면 아이들의 생각하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으로, 아이들은 몸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에게 조용히 앉아 있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어법을 고쳐주는 경우에서와 같은 종류의 역기능을 하게 된다. 아이는 어법을 바로잡게 될지는 모르나 대신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당신과 아이 모두 이야기에 흥미를 잃게 된다. 당신과 아이는 어법에 신경을 쓸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이야기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더욱이 당신이 한 '교육'의 효과는 아이가 다음에 이야기할 때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당신은 이야기뿐 아니라 어법 교육 역시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신체적 움직임을 통제하느라 우리와 아이의 힘을 소모하면서도 우리나 아이가 당장의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욱이 많은 권위적인 교사들조차 알고 있듯이 우리는 아이들의 신체적인 움직임을 정말로 통제할 수는 없다. 잘해야 강의 흐름을 바꾸듯이 그런 움직임의 통로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해악을 입히지 않고서는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의 논의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에 제한되고 있음을 강조했었다. 아이의 '본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특성들을 기술하는 것을 나는 의식적으로 피하려 한다. 그러나 만약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특성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른과 아이 사이의 효율적이고 흥미 있는 대화의 가능성은 모두 배제되거나 크게 제한될 것이다.
3. 아이들은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많은 어른들이 갖기를 원하는 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아이들은, 말하자면 중간에서 멈춘다. 그들은 이야기 도중에 이야기를 마치는 것에 대해 또는 어른들이 그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훨씬 전에 그 대화에 흥미를 잃는 것에 대해 곤혹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이러한 특성은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런 일은 당신의 어른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도 자주 일어난다. 당신은 또한 상대방이 당신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번번이 깨닫곤 했을 것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점이 있다.
첫째는 극히 소수의 아이들만이 어떤 문제들에 대해 많은 어른들이 갖는 것과 같은 심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문제에 흥미를 잃었을 때 그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흔히 홍미를 잃는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두번째로 명심해야 할 점은 '적절한 순서'라는 관념이 아이에게는 낯설거나 별로 흥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 스테레오를 켜는데 아이들은 자주 이런 순서를 무시할 것이다. 혼자서 옷 입기를 배우는 아이가 적절한 순서를 모르는 구두를 신었는데 양말이 침대 한쪽에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또는 적절한 순서에 주의하지 않는 자기의 벽장에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집어넣는 아이 것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다.